[이강충 유림이야기 11]...물질의 풍요 속 길 잃은 시대, ‘충·효·예 충청정신’에서 길을 찾다충남에서 시작된 정신적 도약, 물질 만능주의로 뒤틀린 대한민국 가치관 바로잡을 선한 영향력
우리는 지금 손끝 하나로 전 세계의 지식과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 그리고 인공지능(AI)이 일상이 된 첨단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세상은 더없이 편리해졌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고립되고 파편화되는 중이다.
심화되는 세대 갈등, 각자도생의 개인주의, 그리고 익명성 뒤에 숨어 온라인 공간을 도배하는 혐오와 불신은 우리가 외형적 성장에 취해 정작 가장 소중한 내면의 가치를 잃어버렸음을 증명하는 서글픈 방증이다.
이러한 시대적 진통 속에서 최근 박수현 충남도지사 당선인이 취임 후 첫 도정 사업으로 ‘충·효·예 충청정신 운동 추진’을 선언한 것은 매우 신선하고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화려한 경제 지표나 대규모 토목 공사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세우기 마련인 정치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도정의 첫걸음으로 선포한 것은 단순한 행정 정책을 넘어 붕괴해 가는 공동체의 균열을 치유하려는 철학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전통 유교 문화의 핵심 가치인 충(忠)·효(孝)·예(禮)는 결코 고리타분한 옛 성현들의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물질 만능주의로 뒤틀린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열쇠다.
첫째, 오늘날의 ‘충(忠)’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성실한 책임감이다. 과거의 충이 군주나 국가를 향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이었다면, 현대적 의미의 충은 '내가 속한 공동체를 향한 주인의식과 의무'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너도나도 자신의 권리만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시대에, 타인과 사회를 향해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위태로운 공동체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둘째, ‘효(孝)’는 초고령화 시대의 세대 갈등을 치유하는 연결 고리다. 효는 단순히 내 부모에게 잘하는 사적인 도리를 넘어선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효는 세대 간의 단절을 막고 상호 존중을 실현하는 사회적 가치다.
앞선 세대의 피땀 어린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동시에 다음 세대의 미숙함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포용의 마음이야말로 세대 간의 깊은 골을 메우는 가장 따뜻한 힘이다.
셋째, ‘예(禮)’는 서로를 인격체로 대우하는 상호 배려와 존중의 기술이다. 예는 인간관계의 최소한의 질서이자 품격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공간, 특히 가상세계에서의 '예의 부재'는 곧장 무분별한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진다.
박수현 도지사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220만 도민들과 타운홀 미팅을 가지며 직접 목소리를 들었던 행보는 바로 이 '예'의 실천적 모범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낮은 자세가 있었기에 진정성 있는 소통의 문이 열린 것이다.
충청남도가 ‘AI 수도’라는 거대한 미래 비전을 선포하면서도, 한편으로 ‘충·효·예 충청정신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탁월한 혜안이다.
기술과 산업이라는 화려한 가지가 꺾이지 않고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인간성이라는 단단한 뿌리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고 대체하려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더욱 엄중해진다.
‘충·효·예 충청정신 운동’은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첨단 기술의 무한 속도 경쟁 속에서 인간성을 사수하려는 현대적 나침반이다.
충남의 땅에서 피어오른 이 정신문화의 불씨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대한민국 전체의 가치관을 바로잡는 선한 영향력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작은 배려에서부터 충·효·예는 시작된다.
기술이 세상을 지배할수록, 우리의 나침반은 언제나 사람이요, 공동체여야 한다. <저작권자 ⓒ 유교문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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